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 배우 이정재와의 인터뷰는 007작전을 방불했다. 오랫만에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이정재를 잡기 위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제작사, 감독들의 약속까지 더해지며 이정재는 그야말로 분 단위로 뛰는 듯 보였다. 이정재 소속사 스태프 말을 옮기자면, "어휴! 기자님, 일정이 완전…"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국 영화계에서 이정재가 얼마나 ’핫’한 배우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속에서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이정재는 의리의 사나이였다. ’암살’로 제24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아무리 바빠도 영화상 주최사인 부산일보와 인터뷰는 하겠다고 약속했고, 몇 번이나 시간을 바꾼 후에 극적으로 그랜드호텔 로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정재는 약속한 인터뷰 시간을 넘기며 모든 질문에 진지하게 답을 해주었다. "젊었을 때는 이 직업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정점이 있으면 내려오는 때가 올 거라는 사실이 초조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연이든 심지어 더 작은 역할이든 제가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다면 그걸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요즘 인기가 너무 많은데 한편으론 내려오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정재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나이가 들면서 연기에 대한 준비와 치열함은 늘어나지만, 동시에 연기와 촬영 현장을 즐기는 여유가 생겨 놓다는 말도 한다. 영화 현장에서 선배보다는 후배가 많아지며 이젠 자신이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현장에 도착하면 막내 스태프부터 감독님까지 모든 이들에게 제가 먼저 다가가 인사해요. 영화는 함께하는 작업이니 그렇게 팀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이 중요하더라고요. 스태프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챙길 수밖에 없는 거죠." 언제부터인지 배우 이정재는 현장 스태프들로부터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로 손꼽힌다. 사실 몇 년 전 칸 영화제에 온 모든 한국 영화기자와 관계자들을 초대해 이정재가 거하게 술과 밥을 산 이야기는 영화계에선 두고두고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무엇보다 식사현장에서 이정재가 돌아다니며 일일히 음식과 술을 챙기는 모습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칸 이야기를 꺼내자 이정재는 쑥스러워하며 "어휴! 그 더운 곳에서 고생하시는데 제가 뭐라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외국에선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갑잖아요"라며 칭찬이 오히려 부끄럽다는 반응이다. 제24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긴 영화 ’암살’은 사실 이정재 주변에선 모두 말리던 작품이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상황에서 친일파 역할을 한다는 건 이미지가 생명인 톱 클래스 배우에게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걱정과 만류를 뿌리치고 이정재는 과감히 암살의 염석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고 제가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기자니까 관객에게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제가 해야 할 의무 같은 거죠. 오래된 맛집은 늘 내려오는 정형화된 메뉴를 내놓지만, 배우는 달라요. 새로운 역할은 선보이는 건 신제품을 출시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고요." 이정재는 ’암살’의 염석진으로 변신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노인 역을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먹을 것을 줄여 두 달 만에 15kg을 감량했고, 염석진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매일 아침 2시간씩 목을 풀어야 했다. 이정재는 스스로도 제24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염석진을 연기하려 오랫동안 공들인 부분을 잘 봐주셔서 그런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다행히 이정재는 준비 과정이 고되지만 정작 카메라 앞에서는 편해지고 연기가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는 말을 덧붙인다. 현재 한중합작영화 ’역전의 날’을 촬영 중인 이정재는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의 촬영 현장으로 가야 한단다. 부산은 올 때마다 기분좋은 도시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김효정 기자 tere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