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상 심사에 참여하는 일은 꽤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몇 배로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예심 결과표를 받아든 순간부터는 어떤 영화에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져 온다. 개인적 취향을 접고 역사와 미학, 산업을 포함한 한국영화계 전반의 동향, 나아가 세계영화의 흐름이라는 맥락 속에서 '조금' 더 비중 있게 평가되어야 할 작품은 무엇인지, '조금' 더 칭찬 혹은 격려하고 싶은 감독과 배우는 누구인지를 가늠하는 데는 많은 품이 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예심을 통과한 다양한 태생과 색깔의 작품들이 곧장 고민거리가 되었다. 극장에서 1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와 1000명의 관객도 보지 않은 영화, 제작비 250만 원의 소박한 영화와 220억 원짜리 대형 프로젝트가 동일선상에서 자웅을 겨뤘다. 임권택 영화감독(심사위원장)을 비롯해 강내영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김이석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 김한민 영화감독, 김호일 BS투데이 사장, 윤성은 영화평론가, 전찬일 영화평론가, 정달식 부산일보 문화부장, 주유신 영산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허문영 영화평론가가 심사위원으로 그 지난한 평가와 토론의 과정에 참여했다.
최우수감독상 놓고 열띤 토론
수상 못한 '그 후''박열' 높은 평가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감독상에 대한 논의는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최우수 작품상은 "시대가 망각하고 있던 것을 잘 포착해 80년 광주를 직접 체험했던 중장년층을 관객으로 끌어안았다"는 평가로 애초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던 '택시운전사'가 '그 후', '밀정', '박열', '아수라' 등을 제치고 이변 없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최우수 감독상은 홍상수('그날'), 김지운('밀정'), 김성수('아수라'), 이준익('박열')이 고른 지지를 얻었으나 열띤 토론 끝에 "아수라가 된 지옥 같은 현실을 과감하게 시각화한 작품으로 자신의 최고작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은 김성수에게 돌아갔다.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흑백의 고혹한 영상을 통해 현실적이고도 서정적인 서사를 잘 살려낸 '그 후'와 홍상수 감독, 20억 원대 예산으로 완성시킨 수준 높은 시대극, '박열'과 이준익 감독은 상기 두 부문의 유력한 후보로 끝까지 거론되며 수상작(수상자)과 함께 올해의 영화 및 감독임을 입증했다. 특히, 전년도 감독상 수상자였던 이준익은 올해 다시 '박열'을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려놓으며 중견 감독의 열정과 역량을 확인하게 했다.
남우주연상 부문에서도 '그 후'의 권해효, '박열'의 이제훈이 각각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연기로 감동을 주었다는 평가와 신선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감독과의 화학작용을 120%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경합을 벌였으나 '택시운전사'의 송강호가 수상자로 결정됐다. 캐릭터에 적확한 연기를 보여줬을 뿐 아니라 대중과의 교감, 시대와의 교감 차원에서 독보적인 배우라는 이유다. 여우주연상은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다시 화양연화를 시기를 맞고 있는 '죽여주는 여자'의 윤여정에게 돌아갔다. '악녀'를 통해 화려한 액션을 구사한 김옥빈이 함께 거론되었으나 '주연이 갖는 대표성과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자기를 뛰어넘는 연기를 한' 윤여정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신인감독상과 신인배우상 부문에는 '연애담', '꿈의 제인', '범죄의 여왕', '용순' 등 지난 1년간 주목받았던 저예산 영화들과 이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다수 후보에 올라 각축을 벌였다. 신인감독상은 다른 성격과 환경을 가진 두 여성의 만남과 사랑, 갈등을 보편적인 연애담으로 완성시킨 '연애담'의 이현주에게 돌아갔으며, 신인연기상은 '꿈의 제인'에서 매혹적인 트렌스젠더를 연기한 구교환과 열정적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역을 강렬하게 소화해낸 '박열'의 최희서로 결정되었다.
각본상 또한 일제강점기 일본 내각의 모습과 박열 부부의 재판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 '박열'의 황성구에게 돌아갔다. 음악상은 모그('밀정'), 방준석('군함도'), 조영욱('택시운전사'), 이재진('아수라') 등 쟁쟁한 충무로의 음악감독들을 제치고 '꿈의 제인'의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에게 돌아갔다. 극사실주의로 보이지만 판타지적 느낌이 강한 영화의 분위기를 특유의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잘 살려냈다는 평가였다.
특별상인 유현목영화예술상 수상자는 지난 5월 칸영화제 출장 중 타계한 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김지석으로 중지(衆志)를 모았다. 생전에 그가 보여준 가능성 있는 아시아 영화 발굴에 대한 열정과 그의 지원으로 날개를 단 실험적 영화들의 면면은 유현목영화예술상이 지향하는 청년 정신과 부합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시상식에서 한 번 더 고인을 추억하고 업적을 기리는 순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상작(수상자) 리스트에서 빠진 후보작(후보자)들과 그 제작진들 모두 지난 1년간 한국영화계를 기름지고 풍성하게 만들었던 주체들로, 함께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모든 영화인에게 뜨거운 갈채와 격려를 보내며 내년 이맘때를 기약하기로 한다.
윤성은·영화평론가